일일찻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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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푸짐한 회가 눈에 띄시나요? 죄송합니다. 이거 제가 먹은 겁니다. 오랜만에 배가 놀랄 정도로 좋은 음식을 맞은터라 기념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며칠 전 서울문화재단 공모에 제출할 제안서를 작성하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제안서와 함께 당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협력기관과의 협약서를 받아 두는 것이었어요. 사설기관 안되고 종교시설 안되고, 학교 안 되고..문예회관, 박물관, 그리고 주민 자치센타(동회)의 자치회관이 적격이었습니다.
마침 성내 1동장이 몇 해 전 구청에서 문화체육과 계장으로 오래 근무하시던 분이라, 이분은 이런 사정을 잘 아시리라 믿고, 전후사정을 말씀 드리고 만나는 시간을 약속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그림은 국악관현악단을 한자리에서 시작하면 너무 시끄러워 , 초반에는 몇개의 동을 빌려서 분산 연습하고 어느 정도 파트별 연습이 되면 다 함께 모여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뭐 그런 정도의 구상이었습니다. 일년 30차시의 프로그램의 내용을 짜다 보니 대략 A4 30페이지 가량 되었습니다.
구상은 다 끝나고 , 제안서 공무원분들 입맛에 맞게 작성하고, 집행예산 산출 다 끝내고, 참여단원 이력서 받아두고, 정보제공동의서 받아두고, 실적증명 등.등... 대 장정의 서류 다 끝내고 이제 기관의 장소제공 협약서만 받아 첨부하여 제출하면 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제가 무면허임을 이미 다 아시죠? - 아니? 네비 찍고 가지 왜 택시를 타? 하실까봐 미리 말씀 드립니다. - 택시를 타고 성내1동 사무소 부탁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아주 잘 아는 듯이 하더니 근처에 가서는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때서야 이 아저씨 택시에 네비게이션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무면허 인 것이 특종 감 이듯이, 택시 하시면서 네비 없이 하시는 그 용기 또한 특종감입니다. 우회전 좌회전 아니 조금 더 가서 우회전 또 좌회전...처음에는 방향 감각을 놓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어쨌든 성내1동 사무소 앞에 내렸습니다. 아저씨는 미안하다고 하며 우수리 금액은 안 받더이다.
어떻게 오셨어요..네 동장님 뵈러 왔는데요.. 아! 바로 저기 계시는데요..어느 뇨자가 어느 남자와 문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짜노 그 분은 제가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잘 못 왔나? 가만있어라 여기가 성내1동 아닌가요? 여직원 웃음^^ 여긴 성내 2동입니다.
이런 세상에.. 1동을 가야 하는데 2동으로 와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회전 좌회전 반복하며 드디어 방향 감각을 잃으면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성내1동의 위치, 주변 풍경들도 다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택시 아저씨도 처음에는 1동을 찾으려고 이면 도로에 들어 왔다가 헤매면서리.. 드디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가는데, 묻는 사람의 발음을 1동인지 2동인지 다시 확인 않고, 제 나름대로 알아듣고는 우회전 좌회전 하며 열심히 가르쳐 주었던 분들도 한 몫을 하였고.. 하여튼 지도상에서는 10분이면 갈 거리를 20분정도 헤매였으니 누구 탓 할 것도 없이 네비가 없는 차를 탄것을 한 할뿐입니다.
성내1동장님과의 약속시간은 다 되었고.. 우짜나 그려 온 김에 뵙고 프리핑을 하고가자...
성내 1동장님은 저를 알아봅니다. 많이 본 얼굴이라나 우쨌다나,, 제가 구립국악관현악단장이라고 하자 바로 매치가 되는 모양입니다. 알아주는 동장님이어서 아주 편하게 프리핑?을 하고요 바로 체결이 됩니다. 만세~~ 이럴 때 박수 치시는 겁니다.
마침 자치센터 토요프로그램을 하나 구상 중 이었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주 잘 오셨다..따끈한 차도 잘 대접받고.. 다 부터는 아래 사람들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협약서 도장 꽝꽝 . 잘 사용 하겠다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 파손하지 않겠다 청소, 원상복귀조항 등 서약서에 멋지게 싸인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본래 약속장소인 성내1동으로 찾아갑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 다시 또 우회전 좌회전 이번에는 물어물어 걸어서 갔습니다. 이미 때는 점심시간이라 관내에 있는 동사무소가 서로 몇 키로 떨어지진 않았을 터, 운동 삼아 마침 날씨도 봄 날씨라 걸어가며, 조금 맵다고 소개하는 사천 짜장도 한 그릇 사먹었습니다.
성내1동장님은 점심시간이 끝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아직 안 들어오십니다. 미안한 직원이 문자를 넣습니다. 직접 통화가 되었습니다. 아직 두어시간 정도 밖에서 일이 있어요 어쩌지요? 동장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미 구두로 말씀 드린 바 있으니 서류만 놓고 가기로 합니다. 제가 오전 시간을 못 지킨 죄입니다.
결국 이곳은 첫 번째로 체결불가 통보를 받은 곳이 되었습니다. 시간 안 지킨 것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 되얐나?
성내2동에서 있었던 얘기 - 성내2동 동장님께서 조심스레 물어 오십니다. 다음 주에 동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위한 성금모금 일일찻집을 여는데...와서 연주해 줄 수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소제공협약도 기분 좋게 되었겠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사례금 주지 못하시는 거 절대 미안하지 않게 아주 한방에 흔쾌히 제가 승낙했습니다.
화요일 오전 일찍 목간통에 가서 샤워하고 면도하고ㅡ연습실에 들른 단원 2명과 무슨곡을 할 것인지 정하고 연습한 번 씩 해 보고는, 멋진 한복을 입고 목도리까지 정장을 하고 성내2동으로 일일찻집으로 향했습니다.
세상에!! 열 평 밖에 안 되는 공간에 웬 사람들이 그리 많습니까? 의원나리들.. 못 오신 의원나리의 사모님들..각종 희귀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조합장, 파출소, 예비군, 적어도 명함에 몇 줄 직함을 적을 수 있는, 얼굴 팔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간시장이 되었습니다. 무슨 텔런트라고 하는데 저는 모르겠는데 젊은 단원들은 단박 알아보더이다. 그리고 보니 아조 이쁩니다. 키도 크더이다. 다시 자세히 보니 모피 하프코트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모든 의원들이고 뭐고 남자들이라는 동물들은 다 가서 악수하고 인사하더이다. 우리는 악기 셋팅 할 자리는 커녕 잠시 앉을 자리도 없어서 주방입구 벽에 기대어 서서 차를 마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차 두잔~, 한방차로~~ , 떡좀 더 주세요...~~ 귓가를 울리는 자기들 만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말들.. 점 점 더 시끄러워 지더니 이젠 주방 안쪽으로 아우성치며 말합니다. 두잔? 아니 석잔!!!이라고라고라고라
동장님께서 미안한 표정을 지며 다가옵니다. 어쩌지요 대접이 이래서... 아뇨 괜챦습니다. 손님들 많이 오셔서 보기 좋네요. 성금 많이 들어오겠습니다. 축하드려요. 끝까지 안색 하나 아니 변하고 저 잘 했습니다. 이왕 하기로 한껏 멋지게 놀다 가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1부 순서 - 기타 치시는 분입니다. 자치센터 기타강사라고 하더이다.
마이크 - 흔히 얘기하는 쥐약 마이크 아시지요? 입에서 2센티만 떨어져도 마이크성능을 못내는 옛날 리어카를 몰고 가며 쥐약사세요 쥐약~~!. 하던 마이크 그러니까 입술을 아예 마이크에 갖다 부쳐야 겨우 소리 나는 마이크가 달랑 한대 뿐이니.. 이 양반 기타 치랴 노래햐랴 .. 마이크 스텐드 조차 없으니.. 노래 할 때엔 입으로 기타 간주 나갈때는 기타 울림통 앞으로 마이크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물론 사회자 분의 재치가 곁들인, 일등 무대스텝의 모습입니다.
20여분? 그렇게그렇게 아무도 안듣고 아무도 봐주지 않고 오직 와글와글, 왔다갔다, 잔이 날라 다니고, 떡이 날라 다니고, 성금봉투가 날라다니고, 명함만 날라 다니는 지옥 속에서 혼자하고 혼자 듣는 공연을 하고 기타 아저씨는 물러갑니다.
저희 차례입니다. 그 처참한 20여분을 옆에서 계속 벽에 기대서서 박수부대 노릇을 하던 우리들 ..우짜노 ..
주여 이 잔을 저에게서 치워 주소서. 기도가 절로 나오더이다.
모든 예정 곡들 취소하고
저 혼자 대금으로 시작했습니다. 쥐약 마이크 취구 쪽에 바짝 대니 그나마 소리가 전달됩니다. 이번엔 우리 가야금아가씨가 마이크를 들고 제 대금의 취구에 대 주는 무대스텝을 했습니다.
차라리 젊잖은 곡으로 가자.. 어쩌구리? 조금 조용해 지는듯 싶습니다.
그려, 다음엔 대금산조로 가 볼까? 아직은 수근 수근 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 느그들 수준에 맞게 뽕짝을 연주했습니다. 장녹수, 칠갑산입니다.
웬일입니까? 이제 조용해졌습니다. 스스로 박수가 나오더이다.
그러면 그렇지.. 다음엔 퉁소로 아주 조용한 곡-Annie Laury를 길게 길게 끊어질 듯 말듯..뿜어냅니다.
이제 완존이 조용해 졌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곡을 연주하였습니다. 삼중주 이중주 독주, 그리고 피날레..
작은 찻집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나왔습니다.
한껏 웃음으로 사례하시는 동장님께서 아주 대 만족이신 모양입니다.
직원을 부쳐 좋은 점심식사를 제공하시라는 신신당부의 말씀도 곁들이십니다.
멋진 횟집에 가서 잘 먹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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