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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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쓴 글
<무학대사를 생각한다>
소리마당 창립 1년이 지나 창립공연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던 02년 여름은 정말 뜻있는 해였다. 막 출발한 개인단체의 공연이란 항상 그렇듯이 한 사람 후원자 없이 모두 자비를 털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그 여름에 나는 아끼는 악기를 팔아 공연비용에 써야 했고, 다시 모자란 돈을 메우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초등교부터 유치원까지 몇 군데를 뛰며 벌어야 했다.
성황리에 마친 공연 후의 뿌듯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던 어느 날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에 소리마당 공연관람 후기가 올라온 것을 보고 내심 놀라웠다. 어느 사람이 우리 공연에 관심을 두고 글을 올렸을까나. '국악을 좋아하는 만화가'라는 닉네임의 주인공이 바로 무학대사이었음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이다. 내용인즉 마누라의 국악공연 관람에 무심코 맨발에 자전거 바람으로 따라나섰다가 좋은 공연을 보았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부인은 풍물을 사랑하고 태평소를 즐기는 분이신데 소리마당을 드나들게 되며 국악을 좋아하는 만화가와 한 방 쓰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만화가가 무학보다 모두 잘나서 그들은 잘 나가고, 무학은 그들보다 못나서 지금처럼 궁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무학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무학은 아직 한 번도 성인만화를 그려보지 못했다고 한다. 무학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돈벌이 안 되는 교육만화나 그리고 있으니 집안에 쌀이 떨어지는 날이 있는 날보다 더 많았음은 훤히 보인다.
10여 년 전, 어디 돈 쓸 일 없을까 할 정도로 괜찮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눈이 조금 침침하다는 핑계로 안경점에 가서는 떡~! 하니 대단히 비싼 외제안경과 당시 최첨단이라 대단히 비싸게 굴던 누진 다 초점안경을 맞춰서 폼재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도무지 이 누진 다초점에 나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호되게 주고 맞춘 안경이라 버리기는 아깝고 간직하고 있던 명품 맥아더형 안경이 있었다.
나는 가끔 외출 시 써보기도 하였는데, 촌스럽고 택시기사 같다. 얼굴은 안 보이고 안경만 보인다는 칭찬보다는 안쓰러운 평만 들었다. 나는 얼굴이 둥굴네모난데 무학은 갸름한 얼굴이다. 바로 맥아더와 비슷한 두상이다. 어느 날 소리마당을 찾아온 무학은 커다란 맥아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참 촌스럽고 그냥 공부만 죽으라고 하는 얼띤 공부벌레 같았다. (-무학 ^^ 용서하시오.) 옳거니 이제야 안경의 임자를 만났도다.
예상대로 그 안경은 무학대사의 맞춤 안경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꼭 맞는 맥 안경은 공부벌레에서 이지적인 교수상으로, 약간은 날카롭게, 안경 속의 선한 눈망울은 고뇌하는 예술인의 고민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안경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너무 많이 했다. 무학은 이제 자유인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무학은 자유인의 행복이란 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마구 날려보낸다.
자유인의 행복 001
내 꼭대기는 머리
그 위에 하늘
초저녁별 총총, 새벽별 촘초롱
내 머리 별되어 오르고, 희망의 별 머리에 반짝인다.
오줌누며 별 보다(이건 무학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유인의 행복 002
몸통 직경 3센티미터, 등선전장 12센티미터
거대 굼벵이가 내 손에서 논다.
혐오벌레와 입 맞추기(이건 무학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유인의 행복 003
오일장엔 사람이 있고
돈이 있고
돈따라 도는 물건이 있다.
그곳엔 추억과 애환이 있고
옛날과 미래가 있다
50년을 영천장 지킨 노파가 있다
장돌뱅이 (이건 무학이 하고 싶었다)
자유인의 행복 004(내가 실수로 삭제하여 기억에 남는 글만 남긴다)
새벽 올림픽대교를 넘다.
다리 위에서 큰소리를 욕지거리를 강에 대고 외쳤다.
다리 위에서 오줌싸기(이건 무학이 하고 싶었던 일이다)
자유인의 행복 005
거짓말만 하는 사람 하도 많으니 믿음 없는 사람들은 어이하리오.
오, 친구야 어디메 갈까?
방의경이 작사, 작곡하고 서유석이 노래한 '친구야' 알리기(이건 무학이 하고 싶었다)
자유인의 행복 006
가난한 아빠는 돈을 위해 일한다.
부자 아빠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한다.
로버트 가요사키의 부자와 빈자, 가난과 풍요의 생각 훔치기(이건 무학이 하고 싶었다)
새벽쪽지 007
버릴 거 버리며 왔습니다. 버려선 안 될 것까지 버리며 왔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만화가 권태원-조병화의 남남 26 곱씹기)
윗글은 지난 일 주일여 동안 무학이 날려주던 메시지다. 안동에서 서울로 다시 영천으로 방황하며 자기를 찾는 무학의 모든 고뇌와 열정과 분노와 열등감을 볼 수 있는 메시지다. 나는 한 마디도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한 행위가 오히려 그의 자유스럽고, 그것을 즐기는 방황과 적당히 지쳐가는 육체와는 달리 서서히 마음 깊은 곳 한두 겹 쌓아가는 그의 어떤 고집스러운 생각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어느 날 대 스타가 되는 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학답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집안의 자기 서재에 더 많은 엘피음반이 쌓이는 것을 즐길 것이며 항상 좋아하는 음악이 쉬지 않고 흐르는 것에 대만족할 것이 틀림없다. 또 한밤중 일하다 말고 궁실궁실 무어 먹을 것이나 있을꼬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적당히 널려 있는 과일이나 치즈 조각 같은 것이 있으면 그놈들을 벗 삼아 요기하며 그는 다시 밤새도록 그의 예술세계에 빠져들 것임이 틀림없다.
아이들이 용돈이나 책 구매에 필요하다며 손을 벌릴 때 당장은 못 주더라도 며칠 내로 또는 일주일이 조금 넘는 그런 서로 서먹한 관계가 너무 오래가기 전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잔수입이 생긴다면 그는 더는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고 그는 지아비로서, 가장으로 할 일을 했다는 것에 뿌듯해하기도 할 것이다. 어느 날 아무도 없이 홀로 집을 지키며 다시 집필에 열중하다 문득 시장기에 밥통을 열어 보았을 때 적당히 누른 밥이나 식은 밥이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김치 한 조각에 하루를 배불리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집안에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는 며칠 후면 타게 될 원고료를 생각하며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적당히 내핍하며 아마도 어쩌면 그는 제일 싸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나 아니면 그보다 더 싸게 드는 국수에 간장으로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훗날 무학이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것은 돈 안 되는 국악 세계에 들어와 막막한 가운데에서도 막연히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고 희망을 품는 이녁과 비슷한 놈이 하나 더 있기를 바라는 정말 이기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급기야 그와 나는 그런 처지를, 성공하지 못한 예술인들이 흔히 하는 '순수예술'? 을 한다는 빌미 하에, 그것을 제일의 변명거리로 살며 끼득끼득할 지도 모르겠다.
'낄낄…. 그려 예술인은 가난한 것이야 ^^'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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