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3.04.20 조회수 9,616 댓글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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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가을이 깊어가면서 비도 자주 옵니다.

 

주로 밤새 비가 내리다가 아침이면 멈추지만, 오늘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도 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이른 아침부터 남편과 둘째는 토요마켓으로 갔습니다.
 

큰딸과 둘째가 격주로 나가서 꽈배기를 파는데, 작년까지는 막둥이 혼자서 팔았었지요.
 

평소 밴 뒷문을 열어 놓고, 테이블 하나 놓고 파는데, 비가 오면 밴 안에 앉아서 팝니다.
 

손님도 적게 오는데다 춥기도 하여 아예 담요를 두르고 앉아서 게임을 하면서 지루함과 추위를 잊습니다.
 

오늘도 둘째는 담요를 두른 채로 장사를 했는데, 손님들이 따스하겠다고 했다지만 여전히 추웠다고 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위트 찜질팩을 데워서 가지고 가라고 하려고요.
 



 

테이블을 펼치고 장사할 준비를 끝낸 아이에게 옆 가게 해리는 계란 한 줄(12개)을 테이블에 놓고 갔답니다.
 

요즘 닭들이 데모하느라 알을 잘 낳지 않는다면서 몇 줄 안 되는 달걀을 트럭에 싣고 오는데,
 

그 귀한 유정란을 장사하기 전부터 우리 테이블에 올려 놓고 가버렸다더군요.
 

해리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둘째가 좀 덜 추웠을 거 같습니다.
 



 

오늘은 집에 있는 호두나무로부터 수확을 한 호두를 달걀과 함께 싣고 왔더랍니다.
 

호두를 사면서 엄마가 호두를 참 좋아한다고 했더니, 산 만큼 호두를 더 넣어 주었더군요.
 

토요마켓에서 인기가 좋은 노인 해리의 물건은 늘 일찍 다 팔려버리는데,
 

해리가 오늘 우리에게 인심을 쓴 것이지요.
 

매번 예쁜 꽃을 아낌없이 주시는 꽃할아버지만큼이나 인정이 뚝뚝 떨어지는 해리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뒷집 야채가게 꼬마들이 나오지 않았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네 다섯살의 꼬마들이 부모들을 도우면서,
 

우리 딸들과 해리에게 장난을 치는데 말입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채소를 나르고 장사를 도우면서 용돈을 받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상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답니다.
 

우리 역시 그녀석들이 예뻐서 늘 꽈배기를 듬뿍 안겨 주지요.
 

아이들의 할머니도 질세라 채소들을 우리 차 안에 쑥 집어 넣고 갑니다.
 



 

토요마켓에서 남편과 아이가 집으로 돌아 오면 잔뜩 손에 들고 온 것들을 펼치면서
 

마켓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서로 나눈 사랑들을 이야기 하면서 웃음꽃이 피어난답니다.
 

오늘 역시 츄로스 아저씨가 주신 따끈따끈한 츄로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웠습니다.
 



 

토요마켓에서 우리와 서로 나누면서 지내는 상인들이 대략 7명 정도입니다.
 

키위,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마오리, 칠레인들이네요.
 

우리 가게 근처에 모여 있는 가게 상인들인데, 무척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비바람을 함께 맞으면서 지내서 그런지 정이 참 깊습니다.
 

혹여 나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고, 만나면 반갑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지더군요.
 

우리 아이들도 그 맛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주룩주룩 온 날도 상인들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들려주니까요.
 

그 이야기를 할 때의 아이들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문답니다.
 



 

어제 한글학교 학부모를 만나러 이웃 마을인 레빈에 다녀왔습니다.
 

중요한 일로 학부모 회의를 하던 중 마음이 상했는지,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를 한글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해서요.
 

비록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멀리서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그 덕에 아이가 이제 한글에 대한 재미가 붙었었는데,
 

어른의 기분 때문에 아이가 한글을 배우지 못한다면 아이에게 무척 미안한 일이잖아요.
 

그동안 그 먼 곳에서 한글때문에 온 정성을 생각하니,
 

일단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지요.
 



 

학부모가 운영하는 스시바에 도착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무척 깐깐한 성격인 어머니께서도 
 

그 먼곳으로 내가 직접 찾아가니, 쌓여 있던 앙금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더군요.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온 집안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스시를 선물로 받아 왔습니다.
 

그 덕분에 저녁을 짓지 않아도 되었고, 부모님과의 정은 더욱더 돈독해졌습니다.
 



 

레빈에서 집으로 오면서, 내가 레빈에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가지 않았다면 분명 아이를 한글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며,
 

그 일로 파미에 올 일이 줄어들고, 마음은 점점 더 외로워졌을 겁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날 좀 봐주세요!'란 말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가까이 하고 싶었으나, 거리상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외롭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그 외로움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이되었고,
 

지난 몇 년동안의 내 생활이 그녀와 겹쳐졌었기에 그냥 가만히 포옹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토요시장에서 상인들과 정을 나누는 것처럼 
 

앞으로 그녀는 한글학교에서 정을 나누는데 적극적일 것입니다.
 

그 미래가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진술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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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개 / 1페이지

님의 댓글

이렇듯 정을 표현하는 뉴지님은 진정한 글쟁이 입니다

님의 댓글의 댓글

마음에서 우러난 진솔한 글들은 읽는이의 마음을 가질수가 있는것 같아요...

님의 댓글의 댓글

네, 맞아요. 솔직하고 진솔한 글이 독자를 얻게 되지요. 특히 수필은 더 그렇다고 봅니다. 작가로서 부끄러운 점이 많지만, 글을 통하여 소통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아님,히따나님, 사랑합니다.^^*

히따나2님의 댓글

뉴지님의 따스한 마음이 글에 잘 나타나 있고 또 그림을 보듯 깔끔하게 눈앞에 펼쳐집니다. 한국인이 많지 않았거나 초창기 외국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겪어보았음직한 일들...저도 감회가 새롭네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잊고 살았는데 뉴지님의 글을 보니 저의 지난 일들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이곳의 토요일과 화요일에 열리는 오픈마켓과 비슷한 마켓이 그곳에서도 열리는군요...전 그곳에 가는 것을 산보하듯 즐기곤 합니다. 이곳은 그리 춥지는 않는데....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무척 가슴 뭉클합니다. 저희들 역시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정신없이 살았었지요. 뉴지님 브라보!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갑자기 스시를 외국판에서 찾으시남요?
생선초밥? 유부초밥?
봄이라 입맛이 확 땡기는가 봅니다...
쑥국에 봄 도다리는 어떨까요!!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우리 마을에 와서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음의 여유를 얻고 싶어서 온 사람들입니다. 바쁘고 복잡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자연과 더불어 흙을 친구삼아 사는 사람들이지요. 12년 전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조용하고 순박한 그들을 보면서 단박에 반해서 정착을 했지요.
열심히 사는 건 아니고,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면서 살기 위한 일주일에 몇 시간의 노동입니다. 사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돈이 나오거든요. 사실, 사는 집이 좀 커서 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지만, 꿈에 그리던 집이었기에 그 비용을 감수하고 있고요, 우리 가족은 될 수 있으면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울 수 있는 일을 우선으로 여기기에, 필요이상의 돈은 벌지 않아요.^^* 예술을 사랑해서 그럴지도요. 무아님과 통한 것도 그래서겠지요.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저를 제외한 울 가족은 모두 학생입니다. 늦둥이 대학생 남편을 비롯하여, 요즘 학구열에 불타있어요. ㅎ~
열정만 있으면 세상을 자신에게로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이죠. 그 열정으로 신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답니다.
무아님, 미주스코어님, 히따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주스코어님의 댓글의 댓글

ㅎㅎㅎ 다 아시면서요..^^*
사랑처럼 정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거..
그래서 사랑처럼 정도 없으면 살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주스코어님. 사랑합니다.^^*

미주스코어님의 댓글의 댓글

캑.. .
정이 깊어지면 사랑이고 사랑이깊어지면...
웬수가 되던데...
그래도 사링ㆍ ....

무아님의 댓글

뉴지님은 현대문학사에서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이십니다
히따나님은 봉화 출신인데 유러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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