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편지 - 쉽게 생각하기

작성일 2013.04.09 조회수 9,931 댓글수 15

행복편지 - 쉽게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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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갰는데, 비 개인 아침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 없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삶은 달걀과 함께 도시락을 싸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매번 도시락을 쌀 때마다 어떤 도시락을 만들까 고민이 되지만, 

저녁에 미리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정해 놓기에, 아침이 그리 바쁘지는 않습니다.

주 메뉴는 샌드위치, 삼각김밥, 김밥, 볶음밥, 덮밥..등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족을 위한 도시락을 싸본 기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도시락을 쌌었는데, 이곳에 온 이후로 매일 도시락을 싸면서 살았습니다.

어쩌다 늦게 일어나면 학교 매점에서 사먹게 했었지만, 일 년에 서너번이었을 겁니다.

동전 하나도 아쉬운 생활이었기에 학교 매점에서 사 먹는 다는 건 사치였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 역시 직장인들까지도 도시 한복판의 벤취나 공원의 잔디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에 

어디에서건 도시락을 펴들고 점심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 지속이 되어 언제든 도시락을 꼭꼭 챙기게 됩니다.

헐리데이 가족여행을 갈 때도, 도시락과 과일, 통조림, 과자, 식기류와 버너를 챙겨서 갑니다.

레스토랑에서 기다리다 먹는 것보다 우리끼리 식사를 장만하여 먹는 재미를 더 즐기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도시락을 싸다 보니, 웬만한 셀러드 소스나 요쿠르트 마요네즈등은 집에서 만들어 먹게 되더군요.

가족이 함께 모여서 쿠키를 만드는 재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식빵을 비롯한 이스트빵들로부터 떡 머핀 케이크 푸딩 파이 피자들까지 시도를 하게 되어,

기본적인 식재료들 말고,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제품들은 거의 사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음식을 우리가 만들어 먹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농사는 직접 짓지를 못하고 있네요.

오랫동안 도시생활을 하다가 와서 그런지, 성격 탓인지, 흙을 잘 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시생활을 하다가 뉴질랜드로 온 많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처럼 정원 구석에 텃밭을 가꾸고 있기에,

우리도 시도를 해보았지만, 모두들 잘 키우고 있는 깻잎마저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거센 언덕 위에 위치한 텃밭 탓만 해댔습니다.



아직은 흙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흙을 알게 되기 전까지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일궈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흙이 가르쳐주는 것이 참 많다고 들었지만, 아직은 마음이 흙을 두려워하고 있는듯 합니다.

흙이야말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며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존재인데, 

흙이 주는 혜택을 왜 제대로 받을 엄두를 못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흙을 그리워해서 흙을 밟고 싶어했으면서, 막상 흙을 일구려니 두렵고 힘든 마음이 왜 이렇게 앞서는지 모르겠습니다.



엊저녁에 큰 아이가 학교에 과제로 낼 애니를 좀 봐달라고 하였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공익광고 애니인데 참 잘했더라고요.

앞으로 반이 더 남았는데,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나는 부분부터 해야 하기에,

"이제부터 진짜 어려운 게 남았구나." 했더니, "뭐 쉽게 생각하고 해야지." 그러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 하면서 내 머리를 탁 쳤습니다.



"맞아! 쉽게 생각해야지."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는 과제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한테 다가가니,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있었습니다.

미친듯이 했다면서 시간에 비해서는 잘 나온 거 같다고 하더군요.

도시락을 챙겨 넣는 아이의 모습에서 빛나는 광채를 느꼈습니다.



그동안 내가 어렵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짜 어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귀찮은 거, 하기 싫은 것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더라고요.

무의식적으로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일로부터 도망갈 구실을 만들어낸 것이었지요.



정원에 무성한 잡초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잡초들을 뽑아야 작물을 제대로 할텐데,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잡초들이 짜증나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텃밭가꾸기가 어렵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쉽게 쉽게 뿌리를 내리는 잡초와의 전쟁에서 늘 진 이유는,

어려워서 진 게 아니라 귀찮은 것을 어렵다고 생각해 버린 탓이더라고요.



밤새 내린 빗물 덕에 잡초들이 빗물을 머금고 웃고 있습니다.

나도 잡초를 보면서 웃었습니다.

부드러워진 땅에서 쉽게 뽑힐 잡초를 상상하며 든든한 식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제 아침에 이 글을 적어 놓고 나서 종합볍원에 다녀왔습니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바늘이 작고 가늘어서 배에 꽂기에 어렵지 않더군요.
쉽네~~~ 아이가 한 말입니다. ㅎㅎㅎ
한국 환우들은 이 주사를 비싸서 맞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아이에게 이런 혜택이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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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개 / 1페이지

히따나2님의 댓글

한국의 여러분들도 그런 혜택이 주어질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뉴지님의 텃밭이 꼭 성공하길! 요리솜씨가 대단하시네요. 부러워요. 저도 예전에 텃밭을 시도해 보았으나 제대로 못했고 요리도 시원찮습니다~너무 여성스러운 뉴지님, 가슴이 따뜻하신 분일 것 같아요.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네..한국의 환우들도 이곳 처럼 의료혜택을 받는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히따나님께서 더 여성스러우실 거 같은데요? 요리는 그냥 대충 합니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솜씨는 아니에요. 남편과 아이들이 베이킹하기를 좋아해서 빵 종류와 쿠키는 남편과 아이들이 만든답니다.^^* 울 가족 솜씨지요. ㅎㅎㅎ 행복하세요~~사랑합니다.^^*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뉴지님, 전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연중행사 ㅋㅋㅋ 뉴지님댁은 빵과 쿠키굽는 냄새와 사랑으로 행복가득할 것 같아요...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전혀 여성스럽지 않습니당~~울 영감말에 의하면 조폭...ㅋㅋㅋ 퀼트나 니팅, 바느질 등등의 일은 성격의 여성스러움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ㅋㅋㅋ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으잉~ 부엌엘 안들어가신다니...
그럼 음식은 남편님께서??
히따나님 혈액형이 호옥시~ ㅇ형?
저도 요리는 지가 거의 다해요!
딸들이 아빠가 하는게 맛있다 해서리,..^^*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헤헤헤...구름님, 다 잘할수 있나요? ㅋㅋㅋ전에는 부엌은 걍 전시용..지금은 너무 좁아 못들어감...ㅋㅋㅋㅋ아들이 집에 살던 시절 아주 옛날 시절에는 아들 땜시 했지만 영감만 있으니 이제 배째라...ㅋㅋㅋㅋ눈한번 홀기면 알아서 음식 대령...아, 정말 나 성격 폭로하고 싶지 않았는데...영감이 전모를 밝히겠다고 비디오 찍어서 세상에 공개한다했는데...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우힛!!!
엄마가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믄 고추 떨어진다꼬 못들어오게 하시던디
자취 40년이 되도록 고추는 달려 있어예 ㅋㅋㅋ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아 ~!~ 히따나님은 터프한 아지매, 섹스폰을 들었을땐 멋져버린 아지매,
글도 잘쓰시는 감성적인 아지매, 퀄트가 전문가 수준인 섬세한 아지매,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시벨을 익힐땐 무대뽀 아지매, 요리를 하실땐 한없이 연약한여인이란
말씀 이군요... 또 많이 있는것 같은데 지금은 이동중에 스맛이라
다음에 계속할께요! @-@

히따나2님의 댓글의 댓글

ㅋㅋㅋ 그 연약하디 연약하던 소녀가...ㅎㅎ 이젠 남편과 팔씨름을 해도 이길 지경이 되었으니..애고 세월이 유죄인기라.....

무아님의 댓글의 댓글

아, 그 18인치 허리..의 스칼렛 오하라.... 렛 버틀러에게 버림받고(?) 하던말.."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비록 오늘은 이렇지만 내일은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 될거라고..우린 매일 그러기를 바라고 살고 있나요? 아님 뭐 다른 별수라도 있을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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