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작성일 2012.12.01 조회수 9,440 댓글수 6

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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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날씨가 늘 좋은 편이니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법이 드물죠...그런데 가을에서 겨울로 갈때 항상 비가 좀 오는 것 같아요. 지금 사흘째 비가 오는데 북쪽같으면 완전 눈오는 날씨죠.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곧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까 전 기분이 좋아요....마치 유럽의 날씨처럼 우중충하고 약간 우울한 날씨말이죠.

물론 전화대리점을 하는 제 밴드 멤버인 미세스 김은 이런 날씨 너무 싫다고 해요. 자기 비지니스에 지장이 많다네요. 공식적인 샤핑 씨즌이 시작되어서 다들 선물들 산다고 북적거려야 좋거든요. 이곳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두달 벌어 일년을 지탱해야 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한 것 같아요.

이곳은 한국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솔직히 영어할 기회가 없고 영어를 못해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외국생활 30년에 이런 곳은 첨이죠. 한국가까운 쪽으로 오고 싶어서 왔는데 한국사람도 많으니 일석이조인 것 같기도 하구요. 첨부터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은 영어배우는 건 물건너 갔다고 생각하면 될것 같아요. 저도 첨 부터 이곳에 왔었었다면 영어를 잘 배우지 못했을거에요. 절박한 상황이 아니고는 외국어를 배우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거든요. 근데 영어를 안해도 살수 있으니 배워야 하는 이유하나가 줄어든거잖아요. 일상생활, 가령 미장원에서 부터 빵집, 떡집까지 한국집이 없는게 없어요. 아, 참 사우나까지 있어요. 전 안가봤지만...지난번 학회참석차 한국에서 온 분들이 사우나 가고 싶어해서 모셔다 드리기만 했지요. 한국수퍼마킷은 당연히 있구요...붕어빵도 구워서 팔고 호두과자를 구워파는 코코호도도 생겼어요. 

물론 한국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약소하고 보잘 것없지만 한국떠나던 30년 전 쌀도 팔지 않는 곳에서 외국생활을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 하긴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배추도 팔지 않던 곳에서 살기도 했지만 이젠 동양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미국사람들 사이에 퍼져서 동양 음식재료를 사기가 예전에 비해선 아주 좋아졌죠...예전에 제가 직장에 다닐때는 백인 동료들이 항상 제게 물어보는 것이 뭘 해먹고 사냐는 것이었어요... 제가 먹는 그대로 따라서 자기들도 해먹어서 체중을 빼겠다는 꿈을 가지고 말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한국식당에 외국인들도 꽤 오는 것 같더라구요. 남편도 직장 사람들과 회식같은 거 할 때 자기 미국인동료들이 한국식당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경우가 가끔씩 있어요. 한국음식을 먹으면 동양사람들 처럼 날씬(?)해 진다고 믿고들 있죠. 글고 이나라 사람들은 한국사람들 피부가 좋은 이유도 한국에서 생산되는 마스크 팩같은게 좋아서 그런줄 알고 있어요. 남편의 동료부인들에게도 제가 한국갈 때 마다 그런 것들을 사다가 선물을 하면 무지하게 좋아해요. 정작 저는 그냥 이곳에서 파는 싸구려 베이비 로션 같은거 바르고 마는데 이분들은 제가 뭐 특별한 거라도 쓰는 줄 알고 있어요. 아니라고 하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구요...백인들은 피부가 좀 예민해서 햇빛이나 세월에 좀 민감하죠. 어려서는 너무 예쁜데 20대만 지나고 나면 뚱뚱해지고 피부는 연약해서 주름이 빨리 지고...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뭐라고 할수는 없지만...

라면하나를 누가 한국갔다 올때 가지고 와서 한국 이웃에 돌려도 대단한 선물이 되었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죠.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만큼 살기가 편리해 진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불편한 것도 많기도 하지요. 미국내 택배같은 것은 일주일 이상 걸려요. 한국같으면 하루만에 배달이 되잖아요...어디선가 본건데 미국의 면적은 남한의 100배 가까이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어마어마 한 것 같지않나요? 그래서 불편함과 편리함이 공존을 하나봐요. 한쪽구석에서 난리법석이 나도 한쪽구석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영향받지 않고 살고 싶음 그렇게 살아도 되는 곳..한쪽에서는 스키를 타는데 다른 곳에서는 선 탠을 하는 곳. 날씨가 싫으면 다른 날씨로 이사가도 되는 곳. 한국같으면 아침에 어떤 방송에서 어떤 음식이 어디에 좋다 하면 대한민국 곳곳이 그 소식 다 알잖아요. 이곳은 땅도 크지만 민족도 너무 종류가 많아서 누가 뭔 난리를 쳐도 에지간 하면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에 관심이나 간섭도 그 당사자가 요청하기 전에는 먼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구요...

전 한국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한국인들을 많이 보니까 좋더라구요. 한국사람들과는 그래도 남다른 정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을 해요. 이민사회에서 사귄 사람들은 결국은 한계가 있다고...그래서 재미 동창 모임들이 많기도 해요. 군대 동기를 비롯해서 별별 모임이 다 있어요. 연말이 되어가니 더 극심하구요. 그런 것으로나마 공통분모를 만들면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될까 해서 일까요?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니 뭘 한들 속시원히 그 허탈하고 허무함이 해결이 될것 같지는 않아요. 차라리 그런 경비 모아서 동물고아원에 있는 동물들 도와주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전 이렇게 사이버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어 너무 좋답니다. 비가 오다보니...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나갑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딱 어울리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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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 1페이지

무아님의 댓글

안 그래도 커피한잔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물질의 풍족함이 인간을 더욱 결속시켜 주지는 않다고 봅니다
겨울비.... 또 하나의 낭만 ....
요즘은 춥다 보니 컴 보다 이불속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당 ㅎㅎㅎ

무아님의 댓글의 댓글

네, 생업에 종사하고 싫어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비가 오면 안되지만 전 그냥 비가 오는게 새삼 좋네요. 고등학교때 어떤 애가 비가 오면 엄청 좋다고 했을때 이해를 못했었거든요...교련복입고 비맞으면서 다니는 것이 영 불편하고 싫었었거든요. 네, 그때 여학생들도 교련복 입었던 시절요...ㅋㅋㅋ

쥬프님의 댓글

어제 밤에 말 그대로 짜증나는 겨울비가 왔어요.
제가 요즘 아프고나서 눈이 잘 안보이거든요.
그런데 거래처에 운전하고 가는 데 비가 오기 시작하잖아요...
엄청 짜증났어요...

히따나님의 글 제목을 보고 어제 일이 생각났는 데...
글을 쭉 읽다가 보니 외국에서 생활하시는 히따나님의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지네요.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쥬프님의 댓글의 댓글

한국에서는 비가 오는 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라는 거 알아요. 제가 쥬프님 짜증을 생각나게 해서 죄송하네요~ 이곳은 비가 오면 평소보다는 좀 불편하지만 길거리가 어설프다든지 (한국은 좀 어설프고 교통이 나쁜데서 더 나빠지잖아요) 교통이 완전 마비가 된다든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요.

미주스코어님의 댓글

오랜만의 장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히따나님의 퀼트 실력만큼이나 살아오신 삶도 탄탄하고 쫀쫀하고 아기자기한 삶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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